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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일본인정미소의 인권유린’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36>
글쓴이 : 륜광 날짜 : 2024-05-10 (금) 19:46:19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36>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일제 강점기 수탈의 대명사는 쌀이었다. 우리의 소중한 한머리땅을 저들의 식량기지로 삼았고 훗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때는 병참기지로 쓰였던 바, 가련한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약탈적 횡포는 끔찍하고 쉼이 없었다.

 

1924년 5월 1일 매일신보는 ‘횡포한 정미소’라는 제목으로 인천 가등(加藤)정미소의 만행을 까발렸다. 오죽하면 총독부 기관지조차 이런 기사를 썼을까만은 실제 이들의 조선인 여공에 대한 망동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여직공 5명이 쌀에 섞인 돌과 뉘를 고르는데 가등정미소는 고른 쌀에 돌과 뉘가 발견되면 일한 삯전을 한푼도 못받고 다시 고르게 돼 있었다. 그런데 한술 더떠 조건을 혹독하게 바꿔 묽은 쌀만 보여도 다시 고르게 만들어 한나절을 일해도 삯전을 받지 못하게 되어 불만이 가득한 여직공들이 파업을 감행 한 것이다.

 

“어떤 직공이 불평을 부르짖은 것이 발단이 되어 장차 파업이 시작되고자 할 즈음에, 일본인 감독 모(某)가 들어와서 주모자라고 제 마음대로 지목해 가지고 직공 중에 인천 금곡리 손진섭(孫鎭爕)의 처 박씨(朴氏·30)외 4명을 자리에서 끌어내 가지고 우악한 발로 함부로 걷어 차며 빰과 귀퉁이를 힘센 손바닥으로 무수 난타하다 못하여 높은 2층 사다리 위에서 발길로 걷어 차 떨어트려 부상케 한 후, 그래도 미진하여 사무실 구석에 한 시간 이상이나 감금하였다가 다시 뜰로 끌어내 가지고 “너 같은 년들은 다른 공장에도 못 쓰게 할 터이라”하면서 사진을 찍은 후에 신도 못 신게 한 채로 문밖으로 축출하였다.“

 

5월 2일 조선일보는 ‘힘업고 빈약한 은로(恩露)학교의 전도(前途)’라는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은로학교는 개화파 정치가 유길준(俞吉濬 1856-1914)가 1907년 노량진에 세운 학교로 주민들의 기부와 한강 도선장(渡船場)의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했으나 1917년 다리(한강 인도교)가 세워지면서 도선장 수입이 뚝 끊겨 재정이 몹시 어려워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노량진이 당시만 해도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그시절엔 사대문만 벗어나도 경기도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예를 들면 지금의 신당동은 수구문 밖에 있어 경기도 고양군 신당리였다.

 

조선일보는 5월 2일 ‘명천(明川) 칠보산(七寶山) 탐승회(探勝會)’에서 함경북도의 명산 칠보산 관광을 주관하는 광고를 올렸다. 조선일는 “음력 4월 초팔일을 어디 북선(北鮮) 제일의 명승산(名勝山)되는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의 탐승회를 조직하오니, 조선일보사 성진지국의 미의(微意; 작은 성의)을 찬성해 주시압”이라고 안내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의 칠보산, 비록 일제에 국권을 빼앗겼으나 그시절 우리는 남북 어디라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니 복잡한 감회가 몰려온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부모를 잊지말자’는 기사에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관해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경성과 평양에서는 1, 2, 3일 사흘동안을 두고 어린이, 어머니 아버지의 날을 정하여 새로운 명절을 지킨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우리는 특히 학생 제군에게 이야기 한 마듸를 해 두고자 한다”며 자식의 공부를 위해 어렵게 학비를 대는 부모의 은공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5월 1일 만평에서 화재와 풍랑, 권총강도 등 각종 재해와 강력사건으로 흉흉한 분위기를 묘사했고 5월 2일 조선일보는 ‘사람다운 포주(抱主)’ 기사에서 인천의 한 유곽에서 몸 파는 일을 하는 22세 여성이 임신하자 이를 딱하게 여겨 거액의 빚을 탕감해주고 여비까지 보태 고향에 보내줬다는 미담을 보도했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가 제공하는 백년전 기사를 소개한다.

 

 

☯ 횡포(橫暴)한 정미소(精米所) (1924.05.01.) 매일신보

여공을 감금 구타

가혹한 규칙에 못 이겨

동맹파업을 하려 했다고



 

세상 사람들은 꽃놀이에 열중하던 지난 27일 오전에 인천 항정 가등(加藤)정미소에서는 쌀의 돌을 고르는 여직공 200여 명이 감독 방침 변경에 불평을 두고 동맹파업을 일으키고자 하다가, 연약한 여직공 5명이 사실도 아닌 선동의 혐의로 무지한 일본인 감독에게 유혈(流血)이 낭자(狼藉)하도록 구타를 당하고 한 시간 동안이나 감금까지 당한 후에 신도 신지 못한 채로 축출을 당하는 서슬에 움추러 들어가서 파업이 실행치 못한 사실이 있었다. 그 자세한 내용인 즉 위 정미소의 전일(前日) 방침은 다 고른 쌀에 돌과 뉘가 섞인 것이 발견될 때에는 고르던 직공이 삭전을 못 받고 다시 고르기로 실행하여 내려 왔었는데,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그 조건이 더 혹독히 개정되어 그 위에 묽은 쌀들만 있어도 다시 고르게 되었으므로 당일 아침에 오전 7시부터 10시가 넘도록 일을 해도 한 상자(삭전으로 3전)도 끝을 마칠 수가 없으므로, 어떤 직공이 불평을 부르짖은 것이 발단이 되어 장차 파업이 시작되고자 할 즈음에, 일본인 감독 모(某)가 들어와서 주모자라고 제 마음대로 지목해 가지고 직공 중에 인천 금곡리 손진섭(孫鎭爕)의 처 박씨(朴氏·30)외 4명을 자리에서 끌어내 가지고 우악한 발로 함부로 걷어 차며 빰과 귀퉁이를 힘센 손바닥으로 무수 난타하다 못하여 높은 2층 사다리 위에서 발길로 걷어 차 떨어트려 부상케 한 후, 그래도 미진하여 사무실 구석에 한 시간 이상이나 감금하였다가 다시 뜰로 끌어내 가지고 “너 같은 년들은 다른 공장에도 못 쓰게 할 터이라”하면서 사진을 찍은 후에 신도 못 신게 한 채로 문밖으로 축출하였다.

 

여공을 난타

몹시 맞아서 얼굴이 변해

위와 같이 무수한 박해를 당한 여자들은 맞은 빰이 부어서 인상(人相)까지 변하고 코와 입술에서 흐른 피는 흰 의복에 임림(淋淋)한 채로 억울함을 말할 곳이 없어 울면서 돌아갔다는데, 이 정미소에서는 이 일이 생긴 지 이틀 전에도 남자 인부 측에서도 임금(賃金)의 불평으로 동맹파업이 일어나고자 할 즈음에 인천 경찰서에 전화하여 주모자를 순사에게 내어 주어 경찰의 위력으로 파업을 억제하고자 하다가 형세가 급해 짐을 보고 중국인 인부 20여 명을 깊은 밤에 고용하여 겨우 파업을 면하였다는데, 위 사실을 듣는 사람은 누구든지 가등(加藤)정미소의 만폭(蠻暴)한 태도를 분개한다더라. (인천)

 

☯ 힘업고 빈약한 은로(恩露)학교의 전도(前途)는 (1924.05.02.) 조선일보

보라 이 사정을

뜻있는 일반 인사에게 호소하고자

장차 음악회를 개최할 터이라고



 

경기도 시흥군 노량진에 있는 은로학교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고(故) 유길준(俞吉濬)씨가 그곳 주민과 협력하여 설립한 바인데, 그 학교는 설립할 때부터 빈약한 학교로 본래 기본 자산은 없으나 그 주민의 열성적 출연과 도선장(渡船場) 수입 중에서 다소간의 기부로써 근근이 유지해 가며 별로 큰 곤란은 없이 지내는 동시에 많은 학생의 교육도 교사 제씨의 성력(誠力)으로 매우 양호한 성적을 보았었는데, 지금 8년 전에 한강 인도교가 가설(架設)됨에 따라서 도선장의 수입이 전멸되므로부터 학교 경비가 줄며 경영상에 대 타격을 받아서 존폐 문제까지 일어나는 비운을 당함에, 학교 당국자와 주민 일반은 이를 무한히 느끼며 의협심이 분발하여 천곤백난(千困百難)을 배척하고 헌신적으로 학교 유지에 노력하였으되, 아무 힘없고 빈약한 우리 동포의 일이라 열성도 분기도 모두 수포(水泡)로 돌아가고 1920년에는 할 수 없이 냉정한 이 세상의 경제 핍박을 한탄하고 유감의 눈물 속에서 필경 휴교하는 운명에 빠져 버리고, 수년 동안 회복할 도리가 묘연하여서 학교의 책임을 가진 당국자들과 일반 학부형의 고통과 번민은 말할 것도 없고 더구나 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일조(一朝)에 정든 교실과 사랑하던 선생을 떠나서 의지할 곳이 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로에 방황하는 모양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데, 그것을 보는 그곳 유지들은 백방으로 주선하고 노력한 결과 재작년 10월에 이르러서는 그곳 주민의 각오와 열성으로부터 극 학교에 한 줄기 서광이 다시 비치게 되어, 기부금을 자원하는 이가 답지하여 금액이 3,000여 원에 달하고 학생이 400여 명이나 되어 다시 교실을 열고 학생을 교수함에, 노량진 일대는 어리고 어여쁜 학생들이 책보를 끼고 왕래함을 따라 화기(和氣)가 융융(隆隆)함을 보게 되고 학교 당국자들은 가일층 분발하여 학교의 내용을 일신(一新)히 확장하기에 성심을 다하여, 작년 겨울에는 협착한 교실을 증축까지 하였으나 그간 일반의 경제가 고갈함인지 관계자의 성의가 오히려 부족함인지 기부금의 수입 성적은 양호치 못하고 모든 경비는 점점 많아져서 이 조그마한 학교 하나를 유지하기에 학교 당국자 제씨와 일반 주민의 분투와 고심을 다 하여도 곤란한 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내려 오는 오늘날이라. 원래 교육 기관이 부족한 우리 조선에서 비록 한 개의 보통학교나마 유지하기에 고통을 견디지 못함을 유감으로 알고 백방으로 분투하는 중, 다만 만분의 일이라고 그 부족한 경비를 보충해 볼까 하고 장차 음악회를 개최하고 이 사정을 뜻있는 일반 사회에게 알게 하고자 한다더라.

 

☯ 명천(明川) 칠보산(七寶山) 탐승회(探勝會) (1924.05.02.) 조선일보



 

배계(拜啓) 춘기(春氣)는 화창하고 백화(百花)는 난만(爛漫)한 오는 음력 4월 초팔일을 어디 북선(北鮮) 제일의 명승산(名勝山)되는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의 탐승회를 조직하오니, 조선일보사 성진지국의 미의(微意; 작은 성의)을 찬성해 주시압.

1. 회원은 10명으로 정하고 회비는 10원인데 신입 시에 동첨(同添)할 것.

2. 탐승회 기간은 일주일이고 출발일은 4월 6일입니다.

3. 신입 기일은 4월 4일까지로 정하고 집회는 함경북도 성진군 임명시(臨溟市)로 정합니다.

▲ 신입 장소 : 함경북도 성진군 임명시(臨溟市)

▲ 주최 : 조선일보사 성진지국

 

☯ 부모를 잊지 말자 (1924.05.02.) 동아일보

어린이날에 한 말씀



 

◊ 경성과 평양에서는 1, 2, 3일 사흘동안을 두고 어린이, 어머니 아버지의 날을 정하여 새로운 명절을 지킨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우리는 특히 학생 제군에게 이야기 한 마듸를 해 두고자 한다.

◊ 미국 어떤 대학교에서 졸업식을 거행하게 되어 학생의 학부형은 각처에서 자제의 졸업식에 참례하려 모여 들었다.

◊ 그중에 한 학생의 부친은 시골 농부로 가산이 풍붙이 못 함을 불고하고 4년 동안 아들의 뒤를 대어 오다가 졸업하는 아들을 보려고 학교로 왔었다.

◊ 그러나 그 학생은 의복이 남루(襤褸)한 자기 부친을 보고 다른 학생 앞에서 인사를 아니 하고 말았으므로, 그 부친은 교장에게 사실을 말하고 분연히 집으로 돌아갔고, 그 말을 들은 교장은 그 학생을 졸업식장에서 출학(黜學)을 선포하였다.

◊ 우리는 생활의 곤란이 극도에 달하여 시골에서 40~50석의 추수를 가지고도 아들 유학을 서울로 보내면 파산할 만한 상태에 있어 부형된 이의 속을 얼마나 태우는가.

◊ 그런데 오히려 서울에 와서 학교에나 며칠 다니는 학생은 시골에 계신 부형을 업수히 여기고 또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의 부형이라기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고 한다.

◊ 실로 개탄할 것은 우리가 신문명도 완전히 수입하지 못하는 동시에 우리의 고유한 좋은 풍기를 차차 내버리는 것이다.

 

☯ 과거 1년간 인천의 노동쟁의(勞動爭議) (1924.05.02.) 동아일보

해결은 쌍방 화해와 면직 처분

20년 간의 파업 연일 수

 



어제가 『메이데이』다. 이날이 세계무산자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날이요 아울러 온 세상의 장래를 다스릴 어린이의 기념일이다. 노동제(勞動祭)일인 이날에 있어서 작년 중 인천의 노동자와 자본가 즉 고주(雇主) 측과의 노자쟁의(勞資爭議)가 얼마나 일어났으며 어떠하였는가. 이것을 살펴 봄이 결코 헛일이 아니라 한다. 인천은 어느 곳보다도 쌀의 무역이 많은 곳이므로 벼를 현미로 만드는 『매가리』업과 현미를 백미로 만드는 정미소가 많으며, 따라서 이러한 공장에서 품을 파는 노동자만 3~4천 명에 이르며 정미소의 쌀 고르는 여직공도 여러 천 명에 이른다 한다. 기타 성냥 회사의 직공이나 다른 공장의 인부를 합하면 1만 명에 가깝다 하겠으며 그중에 혹은 품삭을 올려 달라! 혹은 노동 시간을 줄여라! 또는 중국 노동자를 내보내라! 는 등의 이유로 자기의 생명으로 여기는 업을 놓고 파업을 동맹한 일이 한 둘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그중에 우선 큰 것을 살피건대 우선 정미소와 매가리간과 신문사 세 곳인데 그중에 면직을 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파업으로부터 복업(復業)까지 그들의 총 날수를 한 사람으로 연산(延算)하면 약 7,000여 일에 이른다 하며, 이것을 환산하면 한 사람이 약 20년 가량이나 된다 한다.


◊ 노동 시간을 줄여라. 중국인 노동자를 내보내라는 조건으로 파업을 일으킨 것은 궁정에 있는 가등(加藤)정미소에서 455명이 결속하여 닷새 동안 파업을 계속하여 얼마간 주인 측의 이해로 복업된 것이며

◊ 삭전을 올려야 살겠다는 이유로 조선 사람 매가리간(방아간) 10여 곳의 인부 1천여 명이 나흘동안 동맹파업을 계속하여 쌍방의 화해로 복구되었으나 그중 3명은 선동자라는 혐의로 경찰의 구류 처분을 받았고

◊ 월급이 공평치 못하다는 이유로 조선매일신문사 인쇄부 직공 24명이 동맹파업을 일으켜 드디어 그 신문사 간부 측의 거절로 전부 면직을 당한 일이 있었다고. (인천)






☯ 다리 살을 져며서 딸에게 구어 먹여 1924.05.01. (매일신보)




 ☯ 사람다운 포주(抱主) (1924.05.0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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